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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종대왕의 독서법

category 역사 2016. 11. 13. 21:22



세종대왕은 1397년 음력 4월 10일,

정안공이던 태종(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도', 자는 원정이다.

아버지 이방원이 왕세제가 되고, 1408년 12월에 충녕군에 봉해진다.


두 형과 함께 빈객으로 임명된 계성군 '이래'와 변계량에게 수학하였다.

세종은 어릴 시절부터 독서와 공부를 즐겼으며,

태종(이방원)은 충녕 왕자(이도, 세종)의 책 사랑을 익히 알고는 많은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읽기를 너무 좋아하는 아들의 건강을 걱정한 태종이 책을 금할 정도였으며, 관련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임금은 천성이 학문을 좋아해 세자로 있을 때 항상 글을 읽되 반드시 백 번씩을 채우고, 《좌전》과 《초사》같은 것은 또 백 번을 더 읽었다. 일찍이 몸이 불편할 때도 역시 글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으니, 병이 점차 심해지자 태종은 내시를 시켜 갑자기 책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오게 한다. 그리하여 다만 《구소수간》 한 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임금은 천백 번을 읽었다.'

- 《연려실기술 권 3, 세종 조 고사본말


조선 초 학자 서거정은 수필집 <필원잡기>에 세종의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경전을 막론해 능통했고, 하루에 열람한 책이 수십 권에 이른다'


백독백습

100번 일고 100번 쓴다는 뜻의 백독백습



어린 세종은 태종이 주는 책이면, 사서삼경을 비롯해 밤을 새워가며 읽었으며,
한 번 읽고 쓸 때마다 '바를 정' 자를 표시해 가며 백 번을 읽고 백 번을 썼다고 한다.
그 결과 태종의 질문에 항상 능숙하게 답변해 아버지를 경탄케 하였다는 것.

이는 메모의 중요성,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세종의 백독백습 독서법은 책 속에 있는 지식을 완전히 습득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래와 같은 세종의 신념과 가치관은 어릴 적부터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래의 말은 세종의 치세 정신을 나타낸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내가 박덕(薄德)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생민의 주가 되었으니, 오직 이 백성을 기르고 무수(撫綬)하는 방법[각주:1]만이 마음속에 간절하여, 백성에게 친근한 관원을 신중히 선택하고 출척(黜陟)하는 법을 거듭 단속하였는데도, 오히려 듣고 보는 바가 미치지 못함이 있을까 염려된다."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7월 3일 신사 3번째 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백성의 폐해를 구제하는 것 등에 관해 왕지하다"

자신에게 늘 엄격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할 신하들을 바쁘게 굴리고(?) 사용한 성군 세종.
세종대왕 리더십의 자양분인 백독백습 독서법의 뜻과 정신을 배워 현재를 살아가야 할 때이다.




참고

1. Empowering young adults through a spiritual reading program at Kyunghee University, Seoul, Korea(ProQuest, 2007)

2. 세종의 말(세종 저/정영훈 편/박승원 역, 소울메이트 출판, 2016년 07월)

3.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1. 어루만지고 달래주는 방법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