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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의 무당 진령군


나라가 안팎으로 어수선하던 조선 말기.

권력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며 나라를 어수선하게 하는 인물이 또 등장했으니,


이 인물은 바로 진령군이라는 무당이다.


이 여자는 성이 이씨로만 알려져있다.

신윤복 풍속화 [무녀신무]



무당은 민비가 임오군란을 피해 충주에 있을 때,

민비의 환궁 날짜를 맞추어 신임을 얻게 된다.


이후, 무당은 궁까지 따라가게 된다.



무당은 스스로를 관우의 딸이라 칭하고,

민비의 총애를 바탕으로 조정의 관직을 돈을 받고 팔거나,

공금을 횡령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


한양도 속의 북묘 위치(출처: 중앙포토)


민비는 무당을 위해 혜화문 근처, 북묘라는 사당을 지어 주었으며,

진령군이라는 봉작을 내려주었다.


이를 보다 못한 사간원 정언인 안효제가 고종에게 진령군을 베도록 상소를 올렸다.



수파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안효제(安孝濟)의 시문집

「청참북묘요녀소(請斬北廟妖女疏)」는 민비(閔妃)의 총애를 받아 궁중을 출입하면서 요망을 부리던 무당 진령군(眞靈君) 이씨(李氏)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를 죽여 요얼(妖孽)을 깨끗이 없애야 한다고 주청한 상소이다. 

당시 민비의 비호 때문에 누구도 발설하지 못하던 진령군을 직접 규탄한 필봉으로, 

저자의 간관(諫官)으로서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효제는 진언을 하였음에도, 오히려! 왕(고종)의 노여움을 사고 제주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무당 진령군의 권세를 가히 짐작할만하다.



민비와 고종이 무당의 말을 믿고 따랐으니, 관료들 역시 무당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특히, 조병식, 윤영신, 윤태호 등이 북묘를 드나들며 진령군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아첨을 했다고.


그러나, 이런 진령군의 권세도 민비가 죽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으며 끝이 났다.


그녀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으며,

북묘에서도 쫓겨나 삼청동 산골에 숨어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권력을 키우는 간신들의 말년은 결국 그 권력자가 종말을 맞이하면 같이 비참한 종말을 맞는 법이다.


[참고]

1. 간신열전: 모함과 배신의 역사(한철우 저) 발췌 및 참고.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